우리 엄마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
드디어 나도 교복을 입게 되었다
그랬다 우리 엄마의 걱정은
내가 59등 하는 것 보다
우리 아들이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
더 걱정이었다
우리 때는 그랬다
중학교도 시험을 보고 가야 했다
중학교를 가는데도
공부를 잘해야 갔다
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다
특히
인 중 제고는 모든 학생들의 꿈의 대상 이었다
언젠가 병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
서울대 졸업장 옆에 인 중 제고 졸업장을
나란히 걸어 놓으시면서 서울대 졸업보다
인 중 제고를 더 자랑 하셨다
70년도만 해도 국민 학교부터
교육 열이 대단 하였다
과외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들리었다
특히 학교에서는
인 중을 몇 명 보내느냐 에 따라서
명문 학교냐 똥 통 학교로 구분 되었다
그 때는 국민학교도
똥 통 학교와 명문 학교로 나누었다
그럼 나는 공부를 잘해서 갔느냐
아니다 나는 진짜로 운이 좋았다
기적처럼
소위 뺑뺑 이라 는 것이 탄생 하였다
입학 시험을 보지 않고도 뺑뺑 이 만 잘하면
일류 중학교에 갈 수가 있었다
그리 하여 나는 공부보다
구슬 치기에 더 열심 이였다
다만 억울한 건
내가 종민 이 보다 공부도 잘했고
구슬 치기 도 잘했는데 종민 이 가
나 보다 더 좋은 학교를 간 것이다
억울해도 보통 억울한 게 아니다
그리하여 중학교에서 첫 시험을 봤다
46 등을 하였다 너무 좋았다
국민학교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었다
엄마 엄마 나 잘했지
아 이 구 내 새끼 하며 꼭 껴안아 주셨다
엄마가 흥분하여 신이 나 있을 때
작은 누나가 한마디 하였다
너 네 반 아이가 몇 명 이야 그랬다
국민학교 때 한 반에 67명이
중 학교에서는 53명이 되었다
그 순간 엄마는 빗자루를 드셨고
누나는 냅다 뛰었다
그 때는 엄마 손에 잡히는 것이
몽둥이가 되었다
이 누 무 지지 배 어디 쓸데없는
애기를 지 꺼려 지 꺼리긴
엄마의 거친 말 뒤에
누나는 당분간 부뚜막에서
쭈구리고 밥을 먹어야 했다
아이 구 내 새끼 잘했다 잘했어
옆집 창석 이는 50등도 더 했다 더라
그러면 잘한 거 여 모 먹 구 싶은 거 없냐
하셨다
하지만 내가 아는 한 우리 동네에
창석 이는 없었다 엄마는
나를 위로 하려고 거짓말 한 것이다
내가 중학교에 못 갈 가봐 잠 못 이루고
중학교 교복 입은 모습에 흐뭇 해하시고
내가 59등 46등 한 것을 절대
부끄러워 하지 않으신
우리 엄마
일등 한 거 자랑 말고
한번 거짓말 부끄러워하고
46등 부끄러워 하지 말고
45등 하도록 노력하라 시던 울 엄마
문 듯 엄마가 보고 싶네요
ㅇ ㅓ ㅁ ㄴ ㅣ